보석같은 우리말을 캐러 다니는 우리말심마니입니다.

좋은 사람 나섰을 때 잡아야지, 어영부영하다는 놓칠 수 있어.

이럴 때 쓰는 '어영부영'을 우린 꽤 애용합니다.

국어사전에는 이렇게 풀이되어 있습니다.

뚜렷하거나 적극적인 의지가 없이 되는대로 행동하는 모양.

<네이버국어사전>

그런데 어째서 '어영부영'이 이런 뜻으로 쓰이는지 유래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지요.

사실, 이 표현은 역사적으로 좀 슬픈 배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조선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죠.

광해군이 폐위되고 왕위에 오른 인조(16대)가 국가 기반을 강화하고 새로운 반정을 막기 위해 

군령인 어영군(御營軍)을 창설합니다.

곧이어 일어난 이괄의 난을 이 어영군의 도움으로 진압하고

인조는 어영군을 상급기관인 '어영청(御營廳)'으로 승격시키죠.

'御'는 ‘어명’에서처럼 왕을, 

'營'은 ‘병영’이나 ‘군사’를 이르는 글자입니다.

그러다 이 어영청은 효종 때를 지나면서 단순한 친위대 수준을 넘어 그 위세가 커집니다.

그때 국가적 차원에서 북벌계획이 연관되지요.

그런데 야심차게 준비한 북벌계획이 거창하게 준비만 하다가 무위로 돌아가면서

어영청은 유명무실해지기에 이릅니다.

래 어영청은 조선 시대 대표적인 정예 부대였습니다. 

오늘날 특전사에 비유된다고 할까요.

그런 어영청이 조선 말기 무렵은 그 군기가 풀어져 오합지졸 소리나 듣게 됩니다.

지휘부 고관대작과 그 자제들은 제대로 일은 않고 기생집이나 들락거리고요

중요한 훈련은 하급 신분의 양민이나 천민이 대신 맡는 수준이 되었죠.

이렇게 하는 일 없이 밥만 축내니 백성들의 원성을 사게 됩니다.

어영청을 한심하게 생각한 백성들이 뭐라고 했을까요?

"어영청은 영(營군대)도 아니다."

여기서 '군대도 아니다'라는 뜻을 한자로 풀이하면

'어영불영(御營不營), 또는 '어영비영(御營非營)'이 됩니다.

그러다 이게 말하기 편하게

'어영부영'으로 바뀐 것이지요.

우리말, 참 재미있죠?

역사를 좀 더 이어가면요,

고종 때에는 어영청을 비롯해 조선 군졸들의 군기가 문란하고 병기마저 너무 낡아 

도저히 군대라고 할 수 없을 지경이 됩니다.

여기에 1881년(고종 18) 4월에 일본의 도움을 받아 신식 군대인 별기군이 조직되죠.

별기군은 후한 대우를 받고, 구식 군대는 봉급조차 받지 못합니다.

심지어 급료 대신 받는 곡식에는 모래가 섞여 있었다죠.

여러분이 잘 아시는 '임오군란'이 바로 1882년 6월에 구식 군대의 군인들이 일으킨 쿠데타인 셈입니다.

썩어빠진 군 체계에서 곪은 게 터진 것이죠.

'어영부영'이란 일상어 뒤에 숨은 배경을 알고 나니 

앞으로 이 말을 쓸 때는 이전과 달리 느낌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이 간단한 단어 안에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다 담긴 것 같아서요. 

'단어'라는 건 언제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갑툭튀'가 아니라

우리 삶의 희노애락이 스미어 서서히, 그럴 만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참, 소중히 다뤄야 할 것 같고요!

다음에 또 보석같은 우리말을 들고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