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12일

아주 어려서 부터 집에서 나는 오리라고 불렸었다. 히프가 이뻐서라기 보다는 워낙 뒤뚱뒤뚱 걷다가 잘 넘어지기 때문에 우리엄마랑 할머니께서는 내가 머리부터 쭈욱 내밀고 성급하게 어설피 걸어가는 모습을 보시면서 영낙없는 오리새끼라고 놀리셨다. 그 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문지방에 걸려 넘어지던지, 계단에서 구르던지 아니면 방바닥에 있던 종이에 미끌어지던지 여하튼 내가 걸음을 띄어놓는 모든 곳은 지뢰밭이였다.

나이를 먹고 키가 크니까 이제는 사고도 대형사고로 변했는데, 예를 들면 냉동실 문을 열어놓은 채로냉장고에서 쥬스를 꺼내고 급히 일어서다 정수리를 열려있는 냉동실 문에 세게 받쳐서 혹이 나던지, 아니면 식탁이나 테이블 주의를 바삐 지나가다가 골반뼈를 받혀서 3분간 얼굴이 뻘게진채 묵념자세로 있게되던지, 평평한 아스팔트 위를 걷다가도 갑자기 한쪽발이 제맘데로 삐걱거려서 무릎을 땅에 찢게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정말 아팠던거는 고등학교때 학교 정문앞 보도 블락 위를 책을 읽으면서 걸어가다 등교하는 학생들과 교무주임 선생님 앞에서 전봇대에 그대로 이마를 들이 받힌 일이다. 그 날 생긴 이마의 혹은 지금껏 생긴 것 중에서도 그 싸이즈의 크기와 아픔의 깊이로 봐서 당연 1위를 차지한다.

결혼을 해서도 물론 나의 뒤뚱이 인생은 바뀌지 않았고, 너무나 잘 부닫히는 나를 위해서, 스톰은 집에 모가난 테이블 모서리마다 버블랩으로 감싸놓던지 아니면 아예 다칠만한 물건은 내 시야에서 사라지게 어디론가 치워놓았다. 그때는 가구도 몇 점 없었는데도 뭐 그리 잘 넘어지고 부닫히는지 멀쩡히 샤워하러 들어갔다가도 타일 바닥에 미끌어져서 비명을 지른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럴때 마다 스톰은 고속전철 스피드로 나에게 달려왔었고, 항상 "괜찮아?" 하면서 다정히 "호- 쎄쎄-" 도 해주고는 했었다. 근데 비슷한 일이 6개월 이상 하루가 멀다하고 계속되다 보니 스톰이 달려오는 속도가 고속전철에서 마을버스로, 마을버스에서 니아카 수준으로 변해갔고, 급기야 결혼 1주년을 넘겼을때는 내가 다칠때마다 얄궂은 웃음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대가 조심 안해서 그런거니까 스스로 극복해!" 라고 일침을 가하는 상황으로까지 악화되고 말았다.

흐흐흑... 랄라는 제발 나의 오리유전자를 받지 않고 스톰의 탁월한 체력과 운동신경을 닮았으면 하고 임신때부터 간절히 바래왔었건만... 아! 우리 랄라에게서는 이미 아기오리의 자태가 자르르르 흐르고있다.